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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16      노대준 목사

요나의 성냄이 옳은가?



 노대준 목사 (뉴헤이븐한인교회 담임)

 구약성경 중 요나서의 역사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면 요나가 큰 물고기의 뱃속에서 사흘간 있다가 생명을 건졌던 내용, 그가 결국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했더니 역사상 유례가 없는 거국적 회개운동이 일어났다는 내용 등을 들어 요나서는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인간을 향한 교훈적 의미를 갖는 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나가 밤낮 사흘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사흘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마태복음 12:40)는 말씀으로 요나서의 역사성을 입증하셨다. 예수님의 증언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한가? 우리는 요나서의 역사성은 물론,   책이 제시하는 다양한 신학적 주제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요나서가 제시하는 가장 현저한 주제는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적 섭리다. 요나서에는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고자 한다면 어떤 것도 제약을 가하거나 장애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 강조된다.

 사실 요나가 니느웨로 가기를 거부했던 데는 이해할 만한 이유가 있다. 니느웨가 앗수르(오늘날 이락)의 수도였던 거다. 당시 앗수르는 주변국가에게 극심한 고통거리였다. 요나는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니느웨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는 니느웨에서 '마지못해'몇 마디를 던진다.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그러나 그의 메시지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켜 왕으로부터 시작해서 짐승에 이르기까지 온 나라가 금식하며 회개하는 부흥운동이 일어난다. 성경에 나오는 가장 큰 회개운동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회개에 뜻을 돌이키시고 니느웨를 심판하지 않으신다. 이 사실에 대해 요나는 분노한다. “하나님, 그러실 줄 알았어요. 그들을 멸망시키지 않으실 줄 나는 알고 있었어요그럴 바에는 차라리 나를 죽이세요”(요나서 4). 니느웨 사람들은 은혜받을 만한 자격을 눈꼽만큼도 갖추지 못했고, 그러므로 죄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 것이 정의라고 요나는 생각한다. 역설적이게도 요나서 전체에서 진실한 회개에 이르지 못한 사람이 하나 있다면 그는 바로 요나였다.

 요나의 이야기는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위선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간구한다. 하나님이 나에게는 무한히 관대하시고, 끝없이 용서해주시고, 항상 사랑해주실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남에게는 엄격하시라고 요구한다. 나는 자격도 없이,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누리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정의가 끝까지 실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태도에는 자기의(self-righteousness)에 관한 자부심이 자리잡고 있다. 러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나도 턱없이 부족한 존재다. 내가 경멸하거나, 업신여기거나, 죄악 덩어리라고 보는 사람들과 나 자신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별차이가 없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는 상처받고 고통당하는, 길잃은 양과 같은 존재일 뿐이요, 그래서 주의 은혜가 절박하게 필요한 사람이다.

 우리가 성내는 것이 합당한가? 니느웨가 구원얻는 것을 보며, 우리는 함께 기뻐할 수 있는가? 남에게 주어지는 은혜를 더불어 기뻐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자신을 바로 알지못하기 때문이다. 먼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설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자. 무가치한 나에게 베푸신 은혜를 발견했다면, 고통 가운데 있는 이웃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자. 하나님의 선하심에 관해 우리가 가져야할 마땅한 태도는 성낼것이 아니라 감사와 감격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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