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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16      노대준 목사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노대준 목사 (뉴헤이븐한인교회 담임)

 교인으로 등록하고 교회에 다닌다 할지라도, 교회 뜰만 밟다 간 사람을 신실한 크리스찬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교회에서 중요한 직분을 맡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를 신실한 크리스찬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신앙은 겉모양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고백적 삶에 관한 것이다. 진실한 회심은 내면의 변화로부터 일어난다는 사실을 성경은 분명히 가르친다(로마서 10:10). 아직 이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을 명목상의  신자”(a nominal Christian)라고 부를 수 있다.

 구약성경 아모스서는 말하자면 명목상의 신자에 관한 교훈을 제시한다. 아모스 선지자는  기원전 750년 전후 북왕국 이스라엘이 최고의 전성기를 누릴 때 북왕국에서 활동했다. 사람들이 자기 부를 '하나님의 은혜'라고 여기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나름대로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는 듯 보였지만, 그러나 그들에게 심각한 문제(도덕적 타락)가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사람이다. 피상적인 신앙을 가진 성도에 대한 경종이다.

 '무늬만 신자'의 문제는 무엇인가? 그들의 신앙이 날로 쇠락해 갈 수밖에 없다는 거다.처음 단계에서는 약간의 죄의식을 갖는다. 성경의 가르침과 자기 삶이 부합하지 않는 데 대해 뉘우치고 후회도 한다. 그러나 이 단계의 특징은 결단을 미룬다는 것이다. 잘못된 삶을 멈추어야 하겠다는 결단을 자꾸만 미룬다. 때가 되면 삶을 바꾸겠다고 생각만 한다. 그렇게 하루이틀 지나다보니 어느덧 둔감해지고 죄에 대해 무감각해 진다. 무감각해 지는 정도가 아니라 가치관이 전도(顚倒)되는데까지 이른다.

 가치관이 전도되면 그때부터는 선악과 옳고 그름의 기준이 무너져 버린다. 자기가 옳다고 믿고, 약한 사람을 착취하면서도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그 결과 사회경제적 불의의 구조가 고착화되고, 그것을 정당한 사회질서라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축복이라고까지 여기는 것이다. 불의와 압제를 행하면서도 하나님 앞에 나아와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라.

 그들이 착각이 얼마나 중증이었던지 그들은 '여호와의 날'(the day of the Lord)을 대망하고 있었다(아모스 5:8)!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이 죄에 대해 심판하시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시는 진노의 날이다. 당시 불의했던 지도층은 하나님의 진노의 날이 이르면, 하나님께서 악인을 벌하시고 자기들을 칭찬하실 것에 대해 확신했다. 자뻑의 종결판이다.

 악행을 일삼으면서도 겉모양만 거룩한 사람들이 어느 시대에나 교회의 고통거리다. 그런 이유로 성경은 교회가 지도자를 세울 때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인가를 먼저 검증하라고 가르친다(사도행전 6:3). 교회에서의 거룩한 모습과 실제 삶에서의 고백적 신앙이 일치하는가를 살펴보라는 뜻이다. 오늘날 교회가 당면하는 어려움은 대부분 명목상의 신자들로부터 야기되는 문제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아모스가 제시하는 참된 성도의 길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성품을 실천하는 삶이다.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정의를 세울지어다…”(아모스 5:14-15). 이것이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하는 삶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선을 추구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하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면서 죄로부터 돌이키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라고 말하면서 정의를 추구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하나님은 정의로우시고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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