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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3/16      노대준 목사

성도다운 성도, 교회다운 교회



 노대준 목사 (뉴헤이븐한인교회 담임)

 광야생활을 마치고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던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절대로 가나안 족속과 섞이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가나안 족속은 모조리 진멸하고 그들을 가나안 땅에서 철저하게 몰아내라는 끔찍한 명령을 내리셨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이민족은 포함되지 않는가?

 가나안 지역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땅이지만 그땅에 먼저 거주하던 사람들이 있으므로,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여러 민족이 서로를 인정하고 타협해서 평화롭게 살았다면 좋았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가나안 족속을 몰아내라는 명령의 의미를 바로 이해하려면 과거 정복전쟁의 시대, 이민족 간에 평화롭게 공존하지 못했던 역사적인 한계를 감안해야 한다. 평화로운 공존이라는 개념은 오늘날 동일 민족 사이에도 이루기 어려운 이상론이다.

 더욱 중요한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민족의 우상에 마음을 빼앗겨 하나님 아닌 존재를 하나님으로 착각하며 어리석게 살게 될 것을 하나님이 미리 아셨기 때문이다(출애굽기 23:33). 과연,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이민족의 우상신들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과정이 성경에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위 명령의 핵심에 '하나님의 백성됨'에 대한 강조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의 백성됨은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 뿐 아니라, 오늘날의 성도들에게도 여전히 해당되는 하나님의 근본적인 기대이다. 오늘날의 환경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됨을 이루어가야 하는가?

 바울 사도는 이 문제에 대해 성도는 이 세상을 본받을 것이 아니라 마음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한다(로마서 12:2)고 말한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마음이 새로워 지는 것, 곧 가치관의 변화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가치관을 가진 존재답게 성도는 세상과는 구별된 존재로, 달리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구별된 삶에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다.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롯은 소유가 늘어 더 이상 아브라함과 함께 살아갈 수 없게 되었을 때, 자기가 거주할 땅을 선택하게 된다. 그때 롯은 요단지역에 매료되어 선뜻 그 땅을 선택한다. 그 땅은 물이 넉넉해서 비옥하고 좋은 땅이었다. 사업하기 좋은 환경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 지역 사람들이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다”(창세기 12:13)고 말한다. 롯은 그 땅이 비옥한가를 보았으되, 그 지역 사람들의 영적인 삶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했던 것이다. 이 사실은 곧 그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은 산위의 동네가 숨겨질 수 없는 것처럼, 성도는 필연적으로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는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한다(마태복음 5:16). 그럼에도 성도가 구별된 존재로 살기를 포기했을 때, 선한 영향을 끼치지 못할 뿐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어둠에 잠식되는 무기력을 피할 수 없다.

 우리가 성도답지 못하고, 교회가 교회답지 못한 것은힘껏 추구해야 할 성서적 가치를 놓아버렸기 때문이다. 세상의 것들과는 구별되는 거룩한 삶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교회인 듯, 교회 아닌, 교회 같은 교회가 아니라, 산위의 동네같이 온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고 복음의 증인이 되는 구별된 성도, 능력있는 교회공동체가 세워져 가는 세상을 간절히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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