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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16      노대준 목사

사랑의 ‘새’ 계명



 노대준 목사 (뉴헤이븐한인교회 담임)

 로마의 도미티안 황제가 죽은 후 (AD 96년)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의 유배에서 풀려나 다시 에베소교회로 돌아가 거기서 임종한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에베소로 돌아오고 나서도, 설교할 때마다 “사랑하는 자들아, 서로 사랑하라”고 선포했다고 한다. 고령으로 의자에 앉아 힘들게 설교해야 했지만, 그의 메시지는 변함없이 사랑이었다.

 제자들이 “오늘은 좀 새로운 말씀을 들려주십시오”라고 요청하면, 그는 두 손을 들고서,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의 젊었던 시절 불같던 성격 때문에 붙여졌던 별명이 '우레의 아들(마가복음 3:17)'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죽을 때까지 그의 설교가 '사랑'이었던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신구약 성경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사랑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6)는 말씀이야말로 복음의 진수다. 예수님도 사랑의 메시지를 힘주어 강조하셨다(마태복음 22:37-40).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밤에도 끝까지 사랑을 명하신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그런데 예수께서 이미 구약시대부터 충분히 강조되어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사랑의 계명을 굳이 '새 계명'이라고 말씀하신 까닭이 무엇일까? 그것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이 명령의 실천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누리는 일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사랑의 실천에는 무능했던 사람들이다. 특별한 은혜에는 그만큼 무거운 책임이 수반되는 법이다. 큰 사랑을 받았다면 그만큼 더욱 신실하게 베풀어야 한다.

 “어떻게 사랑해야 합니까?” 묻는 성도들을 위해 주께서는 사랑의 실례(實例)를 보여주신다. 더러워진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다. 사랑은 낮은 자리에서 먼저 이웃의 필요를 돌보는 것이다. 성찬을 제정하시면서 주님은 가룟 유다에게도 다른 제자들과 똑같이 대하시고 떡과 잔을 주셨다. 배신의 고통을 주고, 실망을 안겨주고, 사랑하기 힘든 사람이라 할지라도 똑같이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한다. 예수님처럼, 예수님이 했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사랑에 걸림돌이 있다. 요한 사도는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요한일서 3:15)라는 말로 미움이 사랑을 어떻게 가로막는지 보여준다. 더욱이 주의해야 할 것은 '형제'를 미워하게 되기 쉽다는 점이다. 형제란 함께 신앙생활을 해 가는 믿음의 동료를 가리킨다. 우리는 자칫하면 함께 예배하고 신앙생활을 해 가는 동료에 대한 미움이 싹터갈 수 있는 연약한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주님이 하셨던 것처럼 사랑해야 하는 것이 오늘날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고백하는 성도들에게 주어신 새 계명이다. 우리가 진지하게 결단한다면 성령께서 우리의 아픔을 치유하시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새롭게 주실 것이다. 어둡고 후회스러운 지난 해는 뒤에 두고, 이제 사랑의 새 계명을 가슴에 담고 새해를 향해 당당하고 힘찬 발걸음을 내딛자. 우리의 사랑이 미움을 압도할 때, 비로소 성도의 참 행복과 보람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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